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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산책] 행동하는 예술가 뱅크시의 외침

미술계의 악동(?) 뱅크시가 전쟁이 한창인 우크라이나에 잠입해 몇 점의 벽화를 남겨 세계적인 화제가 되었다. 폭격으로 폐허가 된 건물에 그린 벽화를 통해 전쟁반대의 강한 메시지를 세계에 전한 것이다. 그리고 우크라이나 정부는 러시아의 침공으로 전쟁이 시작된 지 1년이 되는 지난 2월24일 뱅크시의 작품으로 기념우표를 발행하여 다시 화제가 됐다.   우표에 사용된 벽화는 작은 체구의 어린 소년이 커다란 덩치의 남자를 유도에서 업어치기를 하듯이 바닥에 패대기치는 장면을 그린 통쾌한 작품이다. 덩치 큰 남자는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이다. 누가 봐도 금방 알 수 있다. 푸틴 대통령의 유도 사랑은 유명하다. 유도 유단자이며, 유도 관련 책을 펴낼 정도로 열렬한 팬으로 알려져 있다.   이 벽화 우표는 ‘푸틴 업어치기’ 우표로 불린다. 아예 우표 왼쪽 하단에는 우크라이나어 약자로 ‘푸틴 꺼져라’는 문구가 적혀 있다. 그렇다면 어린 소년은 우크라이나 국민이다. 어쩌면 젤렌스키 대통령일 수도 있겠다. 다윗과 골리앗 대결의 현대판으로 읽히기도 한다. 아무튼 이 그림이 전하는 메시지는 분명하다. 전쟁을 멈추라는 것이다.   이 벽화는 우크라이나의 수도 키이우 북서쪽에 있는 보로디안카라는 도시에 그려져 있는데, 이 도시는 지난해 러시아 침공 직후 폭격으로 큰 타격을 입은 곳이다. 러시아군은 이곳을 몇 주간 점령했다가 퇴각했고, 우크라이나 정부는 러시아군이 이곳에서 민간인을 살해하는 등의 전쟁범죄를 저질렀다고 비난한 바 있다. 이런 배경으로 뱅크시의 메시지는 한층 선명하고 강렬해진다.   위험을 무릅쓰고 벽화를 그린 뱅크시도 대단하고, 그걸 우표로 만들어 메시지를 막강하게 키운 우크라이나와 젤렌스키 대통령도 만만치 않다. 참고로, 젤렌스키 대통령은 TV 프로듀서와 코미디언 출신이다. 대중의 마음을 잘 읽는 능력을 가졌다는 이야기다.   영국 출신의 뱅크시는 ‘얼굴 없는 거리의 화가’로 널리 알려져 있다. 남의 건물에 벽화를 그리는 행위는 위법이기 때문에 신분을 감추고 활동할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1974년생인 것으로 추정된다는 정도가 알려진 전부다.   하지만, 뱅크시는 현재 세계에서 가장 유명한 ‘행동하는 예술가’다. 뱅크시가 유명해진 것은 기발하고 다양한 활동 덕분이기도 하지만, 그의 작품이 사회와 밀접하게 연결되어 있기 때문이기도 하다. 뱅크시의 작품은 우리 사회 속에 우리와 함께 슬퍼하고 기뻐하고 분노한다.   우선, 작품이 있는 곳이 길거리라서 누구나 감상할 수 있다. 그리고 작품 내용을 풍자와 해학, 유머로 이야기한다. 누구나 보면 금방 이해하고 웃을 수 있는, 기발하지만 친숙한 모습으로 표현된다. 그런 점에서, 근엄한 목소리로 어렵게 이야기하는 현대미술과는 근본적으로 다르다.   뱅크시의 작품은 마치 시사만화처럼 쉽고 재미있으면서도 메시지는 강렬하고, 분명하다. 전쟁을 멈추고, 사람의 생명을 존중하고, 정치적 억압과 폭력이 없는 행복한 세상을 만들자는 것이다. 그런 메시지를 아주 쉬운 말로 충격적으로 전한다. 예술과 사회, 우리의 삶은 별개가 아니고, 미술이 삶의 한 부분이라는 믿음을 주는 것이다.   물론, 뱅크시에 대한 비판도 있다. 지나치게 쇼맨십이 강하다, 진지한 주제를 너무 유머러스하게 다룬다는 등의 비판이다. 하지만 뱅크시는 자신만의 표현방법으로 사회적 이슈와 작품을 단단하게 연결시킨다. 거기에 선한 행동이 더해지면 영향력은 더 커질 수밖에 없다. 이것이 뱅크시의 힘이다.   예술의 사회적 기능이란 과연 무엇일까? 장소현 / 미술평론가·시인문화산책 예술가 행동 예술가 뱅크시 우크라이나어 약자 우크라이나 정부

2023-03-09

[기고] ‘G3 체제’ 서막 알린 우크라이나 전쟁

 러시아의 ‘붉은 군대’가 우크라이나에서 민간인 상대로 저지른 비인도적 만행이 국제사회의 규탄 대상이 됐다.   국제사회는 푸틴 대통령의 호전성과 비문명적 태도에 경악하고 있다. 훗날 역사는 이번 전쟁을 푸틴 대통령의 치명적인 정치적 오판으로 기록할 것이다.   어디서부터 잘못된 것일까. 2014년 러시아의 크림 강제 병합과 돈바스 지역의 분리주의 내전으로 우크라이나의 국가 기능이 약해졌다. 크림 병합 이후 친서방 정권이 두 차례 집권했지만, 우크라이나는 국가의 미래를 러시아와 서방에 의존했다.     우크라이나는 매년 20억 달러 정도의 천연가스 통관료를 러시아로부터 받아왔다. 미국은 우크라이나에 각종 군사기지를 건설해줬고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대통령은 이를 자국에 대한 방위 공약으로 여긴 것 같다. 겉으로 보기엔 실용 외교처럼 보이지만 강대국에 기생하고 의존한 정책이었다.   2013년 유로 마이단 시위를 계기로 권력을 잡은 우크라이나 정부는 그동안 동서로 양분된 국론을 사실상 방치했다. 러시아가 침공하고 나서야 집권 세력이 위기의식을 발휘하고 국론을 결집하자 우크라이나 국민이 목숨을 걸고 항전하고 있다.   우크라이나는 처절하게 서방의 직접 개입을 요청했지만, 북대서양조약기구(NATO·나토)는 한동안 침묵했다. 우크라이나가 동맹국이 아니기 때문에 참전의 근거가 없다는 것이다.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은 동유럽 지역에 미군을 배치해 러시아의 위협에 대비하는 차선 같은 최선을 선택했다. 미군과 나토가 우크라이나에 관여하면 제3차 세계대전으로 이어질 수도 있기 때문이다.     전쟁의 대가는 참혹하다. 러시아의 침공으로 사상자가 쏟아지고 우크라이나엔 500만 명 이상의 난민이 발생할 것으로 우려된다.   우크라이나 침공 이후 푸틴 대통령은 무엇을 원하는가. 러시아는 우크라이나에서 나토의 흔적을 지우고 러시아식 정체성을 이식하려는 푸틴 대통령의 열망을 구현하려 할 것이다. 러시아는 군사적 수단을 동원해 새로운 안보 지형을 구축하려고 한다. 푸틴 대통령은 과거 서방이 나토의 확장 금지를 구두로 확약한 사실에 기초해 나토의 진출선을 조정하려고 할 것이다.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은 그동안 미국과 중국을 중심으로 양분됐던 국제 질서의 현상 변경을 의미한다. 미·중·러 ‘주요 3개국(G3) 체제’의 서막을 전망하는 이유다. 향후 러시아는 우크라이나 침공을 교훈 삼아 주변국의 위협에 대해 군사적 수단을 선호하게 될 것이다.    우크라이나 사태는 구한말 조선의 역사를 소환한다. 강대국에 포위돼 주권을 침탈당했던 치욕 같은 역사의 반복은 절대 안 될 일이다.     평화 제일주의는 실존하는 위협을 관리할 수 없다. 평화의 전제는 자신을 지키는 힘과 의지다. 우크라이나 전쟁은 강대국들에 둘러싸여 있는 한반도의 안보 위협을 다시 생각하게 한다. 결국 자강이 중요하다. 북한은 지난 달 대륙간탄도미사일(ICBM)을 시험발사해 모라토리엄을 파기했다. 한반도 상황의 안정적 관리를 위해 국론 통합에 집중할 때다. 두진호 / 국방연구원 선임연구원기고 우크라이나 체제 우크라이나 침공 우크라이나 정부 우크라이나 국민

2022-04-18

“우크라이나 동남부 상황 심각” 우크라 선교사 김 데이비드

우크라니아 수도 키이우에서 활동했던 김데이비드 선교사는 현재 그 땅으로 돌아가지 못하고 있다.   전쟁이 선교 사역을 가로막았다. 김 선교사는 현재 LA에 와있다. 그에게 우크라이나 현지 소식을 물었다.   김 선교사는 12일 본지와의 인터뷰에서 “우크라이나에 가보면 길 위에 동전이 많이 떨어져 있다. 사람들은 그 동전들을 줍지 않는다”며 “노숙자나 가난한 사람들을 위해서다. 그만큼 우크라이나 사람들은 배려심과 동정심이 많다”고 말했다.   UC버클리 공학 박사 출신의 김 선교사는 고려대학교 교수(기계공학)로 일하다가 안식년을 갖기 위해 미국으로 왔었다. 당시 ANC온누리교회에서 신앙생활을 하던 중 사표를 던지고 선교사로 헌신했다. 그는 지난 1월 지인의 장례식 참석 때문에 한국에 잠시 나갔다가 전쟁이 나는 바람에 우크라이나로 돌아가지 못했다.   김 선교사는 “전쟁이 발발하고 나서 현지인 리더들이 내 차를 이용해 70명 정도를 폴란드 국경 지역으로 피신시켰다”며 “살던 곳에 현금(약 5000달러)도 있었는데 그 돈으로 피신한 사람들을 돕고 있다”고 말했다.   현재 키이우 상황에 대해서는 “서서히 안정되는 분위기”라고 전했다.   그는 “지역마다 다르지만 현지 리더들의 이야기를 들어보면 키이우보다는 돈바스 등 동남부 지역 상황이 매우 안 좋다”며 “현재 비정부기구(NGO) 등이 변두리 지역에서 물자를 제공하고 그 물품을 운반해주는 사람들만 전쟁 지역을 드나들고 있다”고 말했다.   키이우 중심 지역은 아직 전쟁의 영향을 크게 받지 않는다. 그만큼 수도를 사수하겠다는 우크라이나 정부와 시민들의 의지가 강하기 때문이다.   김 선교사는 “팬데믹 때 우크라이나의 사회적 분위기는 코로나를 그렇게 무서워하지 않았다. 그만큼 죽음이라는 것을 두려워하지 않는 민족”이라며 “이번 전쟁에서 우크라이나 사람들이 왜 결사항전의 자세로 임하는지 알 수 있는 대목”이라고 전했다.   한편, 김데이비드 선교사는 14일 JJ그랜드호텔에서 우크라이나 현지 소식을 한인 교계 관계자들에게 전했다. 그는 지난 2011년 카자흐스탄에서 선교 사역을 시작했다. 우크라이나에 들어간 건 지난 2014년 크림 사태 때다. 이후 중국, 태국 등을 돌며 선교 사역을 하다가 지난 2020년 다시 우크라이나로 들어갔다. 장열 기자우크라이나 데이비드 우크라이나 동남부 우크라이나 정부 김데이비드 선교사

2022-04-14

[기고] ‘G3 체제’ 서막 알린 우크라이나 전쟁

러시아의 ‘붉은 군대’가 우크라이나에서 민간인 상대로 저지른 비인도적 만행이 국제사회의 규탄 대상이 됐다. 지난 2월 24일 우크라이나를 침공한 블라디미르 푸틴 대통령은 국내에서 지지도가 더 높아졌지만, 글로벌 평판은 땅으로 추락했다.   국제사회는 푸틴 대통령의 호전성과 비문명적 태도에 경악하고 있다. 훗날 역사는 이번 전쟁을 푸틴 대통령의 치명적인 정치적 오판으로 기록할 것이다.   어디서부터 잘못된 것일까. 2014년 러시아의 크림 강제 병합과 돈바스 지역의 분리주의 내전으로 우크라이나의 국가 기능이 약해졌다. 크림 병합 이후 친서방 정권이 두 차례 집권했지만, 우크라이나는 국가의 미래를 러시아와 서방에 의존했다.     우크라이나는 매년 20억 달러 정도의 천연가스 통관료를 러시아로부터 받아왔다. 미국은 우크라이나에 각종 군사기지를 건설해줬고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대통령은 이를 자국에 대한 방위 공약으로 여긴 것 같다. 겉으로 보기엔 실용 외교처럼 보이지만 강대국에 기생하고 의존한 정책이었다.   2013년 유로 마이단 시위를 계기로 권력을 잡은 우크라이나 정부는 그동안 동서로 양분된 국론을 사실상 방치했다. 러시아가 침공하고 나서야 집권 세력이 위기의식을 발휘하고 국론을 결집하자 우크라이나 국민이 목숨을 걸고 항전하고 있다.   우크라이나는 처절하게 서방의 직접 개입을 요청했지만, 북대서양조약기구(NATO·나토)는 한동안 침묵했다. 우크라이나가 동맹국이 아니기 때문에 참전의 근거가 없다는 것이다.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은 동유럽 지역에 미군을 배치해 러시아의 위협에 대비하는 차선 같은 최선을 선택했다. 미군과 나토가 우크라이나에 관여하면 제3차 세계대전으로 이어질 수도 있기 때문이다.     전쟁의 대가는 참혹하다. 러시아의 침공으로 사상자가 쏟아지고 우크라이나엔 500만 명 이상의 난민이 발생할 것으로 우려된다. 주요 국가산업도 타격받았다. 안전 보장을 위해 우크라이나가 중립국 선언을 검토한다는 말도 들린다.   우크라이나 침공 이후 푸틴 대통령은 무엇을 원하는가. 러시아는 우크라이나에서 나토의 흔적을 지우고 러시아식 정체성을 이식하려는 푸틴 대통령의 열망을 구현하려 할 것이다. 러시아는 군사적 수단을 동원해 새로운 안보 지형을 구축하려고 한다. 푸틴 대통령은 과거 서방이 나토의 확장 금지를 구두로 확약한 사실에 기초해 나토의 진출선을 조정하려고 할 것이다.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은 그동안 미국과 중국을 중심으로 양분됐던 국제 질서의 현상 변경을 의미한다. 미·중·러 ‘주요 3개국(G3) 체제’의 서막을 전망하는 이유다. 향후 러시아는 우크라이나 침공을 교훈 삼아 주변국의 위협에 대해 군사적 수단을 선호하게 될 것이다. 이번 전쟁을 계기로 극한의 공격적 현실주의가 국제사회를 위협하고 있다.   우크라이나 사태는 구한말 조선의 역사를 소환한다. 강대국에 포위돼 주권을 침탈당했던 치욕 같은 역사의 반복은 절대 안 될 일이다.     평화 제일주의는 실존하는 위협을 관리할 수 없다. 평화의 전제는 자신을 지키는 힘과 의지다. 우크라이나 전쟁은 강대국들에 둘러싸여 있는 한반도의 안보 위협을 다시 생각하게 한다. 결국 자강이 중요하다. 북한은 지난 달 대륙간탄도미사일(ICBM)을 시험발사해 모라토리엄을 파기했다. 향후 북한은 현 상황을 전략적으로 이용할 가능성이 있다. 한반도 상황의 안정적 관리를 위해 국론 통합에 집중할 때다. 두진호 / 국방연구원 선임연구원기고 우크라이나 체제 우크라이나 정부 우크라이나 국민 블라디미르 대통령

2022-04-07

[중앙 칼럼] 우크라 전쟁…이면의 목소리들

프랑스 언론인 안느 로르 보넬의 다큐멘터리 ‘돈바스(Donbass)’의 첫 장면은 당시 우크라이나의 대통령 페트로 포로셴코의 격한 연설(2014년)로 시작한다.   “우리는 직업을 가질 수 있지만, 그들은 갖지 못할 것이다. 우리는 연금을 탈 수 있어도, 그들은 탈 수 없을 것이다. 우리 아이들은 학교에 갈 수 있지만 그들의 아이들은 지하실에서 지내게 될 것이다. 왜냐하면, 그들은 할 줄 아는 게 아무것도 없다. 우리는 그들과의 전쟁에서 승리할 것이다.”   포로셴코는 그들에게 전쟁을 선포했다. ‘그들’은 우크라이나 동부 돈바스의 주민들이다. 돈바스는 친러 성향의 지역이다.     보넬이 담아낸 영상은 끔찍하다. 폭격에 파괴된 건물, 죽음의 경계선을 오가는 주민들, 생존자들이 처한 단절과 고립 등 참상으로 가득하다. 주민들은 “우크라이나 정부가 왜 우리에게 이런 폭력을 가하는지 도저히 이해할 수 없다”고 울부짖는다.   8년 만에 다시 전쟁을 마주한 보넬은 “러시아를 비난하는 건 아주 쉽다. 그러나 이 전쟁에 대해 말하려면 유로마이단 시위 이후의 우크라이나를 봐야 한다”고 했다. 당시 우크라이나에서는 친러(동부 지역), 친서방(서부 지역)간 갈등이 심했다. 그러던 중 친러 정권에 대한 친서방 세력의 뿌리 깊은 반감이 극대화하면서 유로마이단 시위(2013년)가 촉발했다. 결국 친러 노선을 택했던 빅토르 야누코비치 대통령이 실각했고 새 정권이 들어섰다.   친서방 성향의 포로셴코는 대통령이 된 직후 친러 지역을 본격적으로 탄압했다. 일례로 포로셴코는 집권 첫날부터 러시아어를 공용어에서 제외했다. 크림반도로 향하던 버스들이 무차별 테러 공격을 받았고, 오데사 지역에서는 반정부 노동조합원 30여 명이 화형을 당하는 사건까지 발생했다.   우크라이나 태생의 외교관 출신 올가 수카레브스카야는 3일 ‘존엄의 혁명이 어떻게 전쟁과 빈곤, 급진 세력의 부상으로 이어졌는가’라는 칼럼에서 “우크라이나 민족주의자기구(OUN)의 이념을 계승한 급진 세력이 유로마이단 시위에 적극적으로 참여했기 때문에 오늘날 우크라이나는 나치즘에 대한 지지를 묵인하고 있다”고 적었다.   러시아가 우크라이나를 침공한 날 저널리스트 릭 스털링은 글로벌리서치에 칼럼을 썼다. 그는 미국 고위 관료들이 유로마이단 시위 지원은 물론 우크라이나 내정에 적극 개입했던 사실부터 지적했다.     당시 BBC는 오바마 행정부에서 국무부 차관보를 맡고 있던 빅토리아 누랜드와 우크라이나 주재 미국 대사인 제프리 피아트가 나눈 통화 녹음을 공개한 바 있다. 누랜드는 이 통화에서 피아트에게 시위를 주도했던 인물들을 평가하며 당시 부통령이었던 조 바이든이 시위 세력을 칭찬했다는 내용까지 털어놓았다. 심지어 누랜드는 유럽 측이 내놓은 절충안을 두고 “젠장할 EU”라며 욕설까지 내뱉었는데, 이는 미국이 우크라이나를 선동하는데 있어 유럽연합이 방해가 된다는 의미였다.     ‘국경 없는 기자회’는 스위스 역사학자 다니엘 간세르가 독일에서 진행했던 강연(2017년) 영상을 지난 3일 공개했다. 이 영상에서는 우크라이나 정부군의 돈바스 지역 폭격(2014년) 이야기가 나온다. 간세르 박사는 “미국은 그 원인을 푸틴에게 돌리고 있지만 사실 미국이 개입해 우크라이나를 나토(NATO)에 가입시키려 한 것이 우크라이나 내부 갈등의 주된 원인이 됐다”고 지적했다.   다큐멘터리 감독 폴 모레라가 제작한 ‘혁명의 가면(Masks of Revolution)’도 최근 다시 주목받고 있다. 유로마이단 사태 이후 친러 주민들이 받은 탄압, 네오나치 사상을 가진 무장 민병대가 우크라이나 사회를 장악하며 가한 만행 등이 여과 없이 필름에 담겼다.   릭 스털링은 칼럼에서 “우크라이나 동부의 유혈 사태를 막기 위해 우크라이나 정부, 반군, 러시아, 독일, 프랑스 등이 민스크협정(2015년)을 맺었다. 나중에 우크라이나 정부와 워싱턴(미국)이 이 협약을 부정했다”고 전했다.     지금의 러시아-우크라이나 사태는 오래전부터 이어진 반목의 역사 속에서 발발한 전쟁이다. 여러 논쟁의 지점이 얽히고설켜있다. 전쟁은 분명 아픔이다. 단, 미디어가 보도하는 것만 보고, 읽는 게 전부는 아니다. 이면에는 다양한 관점과 목소리가 존재한다. 선과 악은 도대체 누가 정하는가. 적어도 미국의 주류언론은 아니다. 장열 / 사회부 부장중앙 칼럼 우크라 목소리 우크라이나 정부 우크라이나 동부 우크라이나 민족주의자기구

2022-03-15

[기고] 침략 전쟁은 결국 실패한다

러시아의 2월 24일 우크라이나 침공은 우크라이나만을 겨냥한 것이 아니다. 유럽의 안보, 유엔 체제와 국제법에 기반을 둔 규범, 나아가 국제질서 전체를 노렸다. 국제 규범을 위반하며 다른 국가를 표적으로 삼는 행위는 전 세계가 우려할 심각한 사안이다.   국제인도법(IHL)을 명백하게 위반한 러시아군의 민간 목표물 공격으로 우크라이나 국민은 어쩔 수 없이 피란길에 나섰다. 난민이 200만 명이나 발생할 정도로 인도주의 재난 사태가 벌어졌다. 우리는 지난 몇 달간 외교적 해결을 위해 지대한 노력을 기울였다. 하지만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은 평화적 해결책에 관심 있는 척하면서 그동안 만난 모든 이들의 면전에서 거짓말했다. 평화로운 해결 대신 끝내 우크라이나에 전면전을 일으켰다.   유럽연합(EU)은 한마음으로 우크라이나 정부와 국민을 강력하게 지지하고 있다. 이는 생사가 걸려 있는 문제다. EU는 러시아의 침략에 맞서 결사 항전하고 있는 우크라이나를 지원하기 위한 긴급 패키지를 준비 중이다. 국제사회는 이번 사태에 대한 책임을 푸틴 대통령에게 묻기 위해 러시아를 완전 고립시키는 조치들을 시행할 것이다.   범죄를 정당화하기 위해 러시아 정부와 지지 세력은 이미 몇 주 전부터 대규모 허위정보를 이용한 선전전을 시작했다. 러시아 국영 매체와 언론 생태계는 SNS에서 대중을 속이고 사실을 조작하기 위해 허위 사실을 유포해왔다. 러시아 정부의 선전 부문 관계자들이 우크라이나 정부를 ‘신나치’와 ‘루소포비아(Russophobia·러시아 혐오)’라고 부르는 것은 전혀 말이 되지 않는다. 우크라이나는 나치주의와 관련된 모든 표현을 금지하고 있기 때문이다. 현대의 우크라이나에서 극우 후보들은 미미한 지지를 받는 비주류 정치인이라 의회 진출 요건도 충족하지 못하고 있다.   우크라이나 정부는 러시아계가 많이 거주하는 돈바스 지역을 버린 적이 없다. 돈바스에서 러시아 문화와 러시아어 사용을 금지한 적도 없다. 도네츠크와 루한스크는 공화국이 아니라 러시아의 지원을 받는 무장 분리주의 단체들이 지배하고 있는 우크라이나 땅이다.   국제사회가 러시아 정부의 무력 행동에 계속해서 공동대응할 수 있도록 EU는 전 세계 파트너들과 협력을 지속하고 있다. 지난달 25일 열린 유엔 안보리 긴급회의에서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략 결의안에 대해 15개 이사국 중 러시아만 거부권을 행사했다.   하지만 지난 2일 181개국이 참석한 긴급특별 유엔 총회에서는 러시아의 침략을 규탄하는 결의안이 141개국의 압도적인 지지로 채택됐다. 러시아·벨라루스·북한·시리아·에리트레아 등 5개국만 반대했고 35개국은 기권했다. 이번 결정의 의미는 분명하다. 국제사회가 주권 국가에 대한 불법적이고 부당한 공격을 강력히 규탄한다는 것이다.   유엔 회원국들은 헌장에 담긴 가치와 원칙을 존중하며 연대해 목소리를 냈다. 우리는 특히 총회 결의안을 공동으로 발의한 대한민국 정부에 감사하게 생각한다. 우리는 대한민국이 러시아 침공을 분명하게 규탄하고, 경제제재를 비롯한 국제사회의 노력에 동참하는 점을 환영한다. 우크라이나에서는 물론이고 유럽과 세계 안보에 대한 러시아의 위협이 갈수록 심각해질 가능성이 높기 때문에 국제사회의 모든 책임 있는 일원은 제재를 확대하고 러시아를 더욱더 고립시키고 만행을 폭로할 만반의 준비를 해야 할 것이다.   우크라이나 전쟁으로 이 세상은 예전에 우리가 알던 세상과 같을 순 없을 것이다. 지금은 국제사회가 연대해 신뢰와 정의, 자유를 기반으로 우리의 미래를 건설하고 목소리를 내야 할 때다. 무력은 정의를 실현하지 않는다. 그런 전례는 없으며 앞으로도 그럴 일은 없을 것이다. 호세프 보렐 / EU 외교·안보 정책 고위대표기고 침략 전쟁 우크라이나 정부 러시아 정부 우크라이나 침공

2022-03-11

[J네트워크] 하이브리드 전쟁

미하일로 페도로프(31) 우크라이나 부총리 겸 디지털혁신부 장관의 트위터는 ‘사이버전장터’를 방불케 한다. 그는 지난달 26일 자신의 트위터에 “우리는 IT 군대를 만들고 있다. 디지털 인재가 필요하다”는 글을 올렸다.     러시아의 전면 침공 개시 며칠 전 우크라이나 정부와 금융기관은 대규모 분산서비스거부(디도스·DDoS) 공격을 받았다. 우크라이나는 배후로 러시아를 지목했다. 이틀 뒤 러시아 외무부와 모스크바 증권거래소의 웹사이트가 마비된 것은 우연이 아니다. 현재 27만5000여명이 우크라이나 정부가 만든 ‘IT ARMY of Ukraine’이란 텔레그램 채널을 구독하고 있다.   현대전은 이처럼 재래식 전력뿐만 아니라 사이버 공격, 심리전 등을 동원하는 복합전술이 특징이다. ‘하이브리드 전쟁(Hybrid Warfare)’이란 개념이다. 러시아는 하이브리드전의 최강국으로 꼽힌다.   2008년 조지아 침공과 2014년 크림반도 합병 때도 군사작전과 심리전을 결합한 하이브리드 전술을 구사했다. 냉전 시대 이후 미국의 독보적인 경제력과 군사력을 따라잡을 수 없어 사이버전, 정보전으로 눈을 돌렸다.   로이터통신에 따르면 우크라이나 국방부는 자국 해커들로 구성된 정예 사이버전 전담부대도 창설할 계획이다. 이들은 사이버상에서 첩보활동을 펼칠 뿐만 아니라 발전소와 상수도 시설 등 인프라시설 방어 임무 등을 맡는다. 왜 상수도 시설인가. 지난해 2월 미국 플로리다주 피넬라스 카운티에서 상수도 시스템 해킹 사건이 일어났다. 해커는 ‘양잿물’로 불리는 수산화나트륨(NaOH) 투입 비율을 기존보다 100배 넘게 증가시키려 했다. 수산화나트륨은 수도관 부식방지에 쓰이지만 기준치를 넘어서면 인체에 해롭다.   사이버전만큼이나 치열한 심리전의 우크라이나 선봉장은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대통령이다. 그는 지난달 26일 수도 키이우 거리에서 스마트폰을 들고 “나는 여기 있다”고 말하는 셀피 영상을 SNS에 올려 도피설을 일축했다. 키이우가 러시아의 미사일 공격을 받은 다음 날이었다. 젤렌스키 대통령의 의사소통력이 우크라이나인들의 항전 의지를 고취시키고 결집시킨다는 평가다. 러시아의 앞선 두 차례 하이브리드전은 성공했지만, 세 번째 시도는 ‘드네프르(우크라이나를 동서로 가르는 강)의 기적’ 앞에서 꺾이는 모양새다. 위문희 / 한국 중앙일보 기자J네트워크 하이브리드 전쟁 하이브리드 전쟁 하이브리드 전술 우크라이나 정부

2022-03-04

[칼럼 20/20] “신이시여, 우크라이나에 산맥을…”

“신이시여, 어찌하여 우크라이나에 산맥을 펼쳐 두지 않으셨나이까?”   팀 마샬의 저서 ‘지리의 힘(Prisoners of Geography)’에 나오는 내용이다. 마샬은 신심이 깊다고 자처하는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이 잠들기 전에 이런 질문을 신에게 했을 것이라고 한다.     파이낸셜타임스, BBC방송 등의 기자로 25년 넘게 활동한 팀 마샬은 지리의 관점에서 국제정치, 경제, 전쟁, 분열, 빈부격차 등을 조명한다. 정치·경제 체제에 따라 국가의 미래가 바뀌지만 운명적으로 결정된 ‘지리적 조건’을 무시할 수 없다고 강조한다. 통치 이념은 바뀔 수 있지만 국토의 위치는 불변하기 때문이다.     그는 ‘만약’ 러시아 서쪽 우크라이나에 산맥이 있었다면 러시아가 북유럽평원을 통한 서유럽의 침략을 받지 않았을 것이라고 가정한다. 프랑스 나폴레옹도 나치의 히틀러도 평원을 지나 러시아를 침공했다.     중국과 인도는 서로 인접한 국가지만 역사상 분쟁이 거의 없었다. 1962년 분쟁 이후 2020년에 갈등이 불거졌지만 국경 충돌 수준에 그쳤다. 마샬은 대규모 전쟁을 피할 수 있었던 것은 세계에서 가장 높고 험준한 히말라야 고원지대가 두 나라 국경을 가로막기 때문이라고 설명한다. 2년 전 중국과 인도의 분쟁이 발생했을 때 홍콩사우스차이나모닝포스트는 양국 국경의 고산지대가 ‘자연적인 중재자’가 됐다고 보도했다.     우크라이나는 유럽에서 두 번째로 영토가 넓다. 흑토로 덮인 비옥한 평야가 곡창지대를 이룬다. 프랑스에 풍년이 들면 서유럽을 모두 먹인다는 말이 있듯이 우크라이나에는 ‘유럽의 빵 바구니’라는 비유가 있다.     러시아가 우크라이나를 침공했다. 표면적인 이유는 우크라이나 정부의 표적이 된 반군 세력의 보호다. 반군이 점령한 도네츠그 인민공화국(DPR)과 루간스크 인민공화국(LPR)의 독립도 인정했다. 이면은 우크라이나의 유럽연합(EU)과 나토(NATO) 가입을 막으려는 시도다. 체코·폴란드·헝가리에 이어 우크라이나까지 나토에 가입하면 서방이 러시아 서쪽 국경 바로 앞에서 총부리를 겨누는 형국이 된다. 또한 푸틴의 이번 침공에는 소비에트 시대의 영광을 재현하려는 의도도 있다     우크라니아의 역사는 순탄치 않다. 러시아와 함께 슬라브족 국가의 기원이 됐지만 제대로 국가 체계를 세운 역사가 거의 없다. 유럽 열강의 틈바구니에서 6차례 독립선언을 했지만 무산됐다. 1991년 소비에트 연방이 해체되면서 독립국의 역사가 시작됐다. 2004년 반정부 시위 ‘오렌지혁명’으로 친러 세력을 축출하고 EU와 나토에 가입하려 했지만 뜻을 이루지 못했다.     지정학적 요소는 ‘양날의 칼’이다. 강대국은 지리적 장점을 세력 확장의 발판으로 이용하지만 군사·외교적인 힘이 없는 국가는 강대국들의 전쟁터로 전락한다.     우크라니아 국호는 슬라브어로 ‘가장자리’ 또는 ‘변방’을 뜻한다. 러시아의 입장에서 보면 서쪽의 변방이지만 서유럽 국가들의 관점에서는 동쪽의 가장자리다. 양대 세력의 틈새에서 강대국들의 각축장이 되면서 우크라이나는 아픈 역사를 간직해 왔다.     예전에는 국가의 지정학적 위치가 한 나라의 운명을 결정지었다. 지금은 지리적 요소가 국제관계에 미치는 영향이 희석되기는 했지만 여전히 국가가 위치한 지역은 중요하다.     국가의 지리적 요소는 천혜의 축복이 되기도 하고 물리적 감옥이 되기도 한다. 마셜의 저서 원제처럼 우크라이나 국민은 ‘지리에 갇힌 수인(囚人)’으로 살았고 지금도 고통을 받고 있다.     전쟁을 정당화할 수 있는 명분은 어디에도 없다. 산맥을 원했던 푸틴의 기도가 이뤄졌다면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은 쉽지 않았을 것이다. 이제는 그 ‘산맥’이 우크라이나 국민의 간절한 기원이 됐다.  김완신 / 논설실장칼럼 20/20 우크라이나 산맥 우크라이나 정부 러시아 서쪽 블라디미르 러시아

2022-03-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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